“같은 여행비, 다른 경험”…농인의 여행장벽 허무는 데프누리 

맞춤형 관광·교육사업 연계하고...

국제 농인 네트워크로 방한 관광 가능성 모색 

포용관광의 미래를 여는 데프누리 임서희 대표
농인을 위한 관광기업 데프누리(주)를 창업한 임서희 대표

남미 마추픽추의 풍경 앞에서도 여행의 아쉬움은 남았다. 현지 가이드가 들려주는 설명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같은 비용을 내고 같은 장소를 찾았지만, 여행에서 얻는 경험까지 같지는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던 임서희 데프누리㈜ 대표에게 이 기억은 관광의 정보 접근성을 다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됐다. 

임 대표는 이후 공감만세 대표와 만나 조언을 들으며 자신이 겪은 불편을 사회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 정보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많은 농인이 반복해서 경험하는 구조적인 장벽이었다. 이를 직접 해결하고자 2022년 11월 농인들만을 위한 전문여행사 데프누리(주)를 설립했다. 

데프누리는 농인 맞춤형 여행사업과 수어 교육, 관광 접근성 컨설팅 등을 통해 관광 현장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사업의 중심에는 농인이 여행의 고객이자 상품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정보의 장벽 

마추픽추 등 여행지의 정보 접근성 장벽

임 대표가 주목하는 관광 접근성은 관광지에 도착한 뒤의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행 정보를 찾고, 일정을 계획하고, 예약하고, 현장에서 해설을 듣거나 체험에 참여하는 모든 과정이 연결돼 있다. 어느 한 단계에서 의사소통이 막히면 여행 전체의 만족도와 선택권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관광을 핵심 사업으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광은 숙박과 교통, 문화와 음식, 체험 등 여러 산업이 맞물리는 분야다. 관광 현장의 접근성이 나아지면 변화의 효과가 다양한 서비스로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임 대표는 수어교육과 장애인식개선 활동의 중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교육이 실제 산업 현장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관광업계가 농인 고객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를 예약과 안내, 해설과 체험 서비스에 반영할 때 여행의 질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관광 접근성은 시설이나 서비스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문제입니다.”

 

## 수어 영상 너머, 농인이 직접 기획하고 해설하는 관광 

수어로 여행지를 해설하는 농인 가이드

관광지에 수어 안내 영상을 마련하는 일은 정보 접근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러나 임 대표는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농인이 관광상품 기획에 참여하고, 농인 가이드가 현장에서 직접 해설하며, 관광기업이 농인 고객을 이해하는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강조하는 과제는 농인 관광가이드 양성이다.

농인 관광가이드는 수어로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과 함께 농문화와 농인의 경험을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킬 수 있는 전문인력이다. 당사자의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여행의 내용과 소통 방식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 

데프누리 수어가이드 담당 정은혜씨가 소개하는 아산관광에 대한 유튜브 영상

대표와 남편, 직원들이 모두 농인인 데프누리는 이러한 당사자성을 사업의 강점으로 삼는다. 여행을 준비할 때 어떤 정보가 필요한지, 현장에서 어떤 상황이 불편한지 직접 경험해 왔다는 점이 상품 개발과 고객 응대의 바탕이다. 

수어를 사용하는 고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고객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요구와 의견을 전할 수 있고, 회사는 이를 구체적으로 파악해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다. 

포용관광의 미래를 설명하는 임서희 대표

데프누리는 농인 가이드와 지역 관광사업자를 연결하고 새로운 관광 콘텐츠를 발굴하는 역할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임 대표는 "농인이라는 정체성이 기존 시장에서 충분히 살피지 못한 고객의 요구를 발견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 무장애 관광, 이동 편의에서 언어·정보 접근성으로 

임 대표는 국내에서 무장애 관광과 관광약자의 여행 접근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흐름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정책과 현장의 관심이 이동 편의와 물리적 시설 개선에 상대적으로 집중되면서, 농인에게 필요한 수어와 시각 정보 접근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업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역할을 확대하는 일도 과제로 꼽았다.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의견을 제시하는 데서 더 나아가 관광사업의 운영과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제안하는 방향은 ▶수어 관광 콘텐츠 확대 ▶농인 관광 전문인력 양성 ▶농인 창업기업 지원 ▶당사자 주도 관광사업의 확대다.

이들 과제가 함께 추진돼야 서비스 개선과 산업 참여가 연결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관광산업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인정하는 정책적 전환이 필요합니다.”

 창업 현장에서도 접근성은 중요한 경영 과제다. 임 대표는 회의와 협상, 강연 등에 필요한 수어통역 비용을 회사가 직접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농인 관광시장이 아직 규모가 작고 특수한 시장으로 여겨져 사업성을 증명하는 일 역시 쉽지 않았다고 돌아봤다. 

이러한 경험은 농인 기업이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사업 기반과 참여 기회의 필요성을 더욱 분명하게 했다. 

## 관광과 교육을 연결해 지속 가능한 사업 기반 마련 

데프누리는 서울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여성기업 인증, 관광벤처사업 선정 등의 성과를 거뒀다. 임 대표가 다음 단계에서 중시하는 것은 사회적 가치를 지속할 수 있는 수익성과 자립 기반이다. 

사업 구상은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농인 맞춤형 관광상품의 개발·운영과 수어·장애인식개선 교육이다.

관광사업이 농인의 여행 선택권을 넓힌다면, 교육사업은 관광업계와 기업의 접근성 이해를 높인다.

두 분야를 연계해 고객의 경험과 서비스 제공자의 역량을 함께 개선하겠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농문화와 여행의 의미를 담은 굿즈 판매, 관광기업 및 기관과의 협업을 더해 수익구조를 다변화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농인 고객과 관광 공급자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고도화하고자 한다.

모든 상품을 직접 운영하기보다 여러 관광사업자와 협력하며 성장하는 구조가 목표다. 

농인을 위한 맞춤형 관광 교육 및 현장 안내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경영컨설팅을 맡은 최문용교수(사진 좌측)가 임서희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경영 컨설팅도 사업 방향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임 대표는 기존 사업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집중해야 할 분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조언을 얻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실제 경영에 반영해 사회적 가치와 사업 경쟁력을 함께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구상이다. 

데프누리 농인 전문 가이드와 여행 참가자들
서울관광센터를 방문해 상담을 한 후 기념촬영하는 임서희 데프누리 대표와 최문용 교수

## 농인과 청인이 함께 여행하는 환경, 협력의 지속성이 관건 

임 대표가 지향하는 포용관광은 농인과 청인이 함께 여행하며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환경이다. 이를 위해 관광기업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실질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지자체 관광 프로그램에 수어 가이드 서비스를 도입하는 방식, 농인 대상 관광 바우처 사업을 확대하는 방식, 관광 관련 공공기관이 전문기업과 함께 농인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그 과정에서 농인 당사자가 운영하는 기업에도 실질적인 참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객의 요구와 접근성을 깊이 이해하는 기업의 전문성을 활용하면 현장에 맞는 서비스를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단발성 지원을 넘어 장기적인 협력과 사업 기회가 마련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전문인력과 콘텐츠가 축적되고 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도 지속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 국제 농인 네트워크로 한국 관광의 접점 넓힌다 

해외 농인 관광객을 위한 방한 상품도 데프누리가 주목하는 분야다. 나라마다 사용하는 수어는 다르지만, 농문화를 바탕으로 형성된 국제적인 교류망이 관광 협력의 접점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임 대표에 따르면 데프누리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DeafNation 행사와 세계농아인연맹(WFD) 관련 국제행사 등에 참여해 한국 관광과 회사를 알려 왔다.

탄자니아 농인 커뮤니티와는 현지 리더들을 만나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베트남에서는 농인 관광가이드 양성과 관광 접근성 향상을 위한 교육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데프누리 서비스 홍보영상

앞으로는 해외 농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수어로 관광정보를 얻고, 농인 가이드와 함께 한국의 문화와 지역을 경험하는 상품을 늘려 갈 계획이다.

한국 농인의 해외여행과 해외 농인의 방한 관광을 연결하는 국제 농인 관광 플랫폼으로 성장하는 것이 장기 목표다.

 

## “접근성 투자는 새로운 관광 수요를 만드는 투자” 

임 대표가 이루고 싶은 변화는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농인이 여행을 계획할 때 제약과 어려움부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데프누리를 떠올릴 수 있는 신뢰를 만드는 일이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업계가 포용관광을 관광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분야로 바라봐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접근성 지원과 전문인력 양성, 당사자 주도 기업 육성, 상품·콘텐츠 개발 기회가 함께 확대돼야 한다는 제언이다. 

“접근성에 대한 투자를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관광 수요를 만들어 내는 투자로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마추픽추에서 충분히 듣지 못했던 해설에 대한 아쉬움은 이제 관광의 경험을 바꾸려는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데프누리가 만들어 가려는 변화의 중심에는 농인이 있다. 여행을 선택하는 고객이자, 지역을 해설하는 가이드이며, 새로운 상품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업가다. 임 대표는 그 다양한 역할을 통해 모두를 위한 관광의 가능성을 넓혀 가고 있다.

데프누리가 제작한 서대문형무소 투어 홍보영상

문의 : 데프누리 임서희 대표(010-3085-6010 핸드폰은 문자로만)

메일 limseohee92@deafur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