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최문용 | 서울특별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컨설턴트

신사동 가로수길은 한때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 거리이자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였다. 디자이너 숍과 갤러리, 개성 넘치는 카페들이 골목 곳곳을 채우며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도시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를 경험하려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가로수길의 모습은 예전과 사뭇 다르다. 공실이 늘어나고 상권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한때 서울의 트렌드를 이끌었던 가로수길의 경쟁력이 빠르게 약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 건물주와 상인,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먼저 지적되는 문제는 높은 임대료다. 물론 임대료는 상권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임대료를 낮추는 것만으로 가로수길이 과거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필자는 문제의 본질이 임대료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본다.

사라지는 ‘가로수길다움’
첫째는 거리의 정체성 약화다.
과거 가로수길의 경쟁력은 대형 브랜드나 화려한 건물 자체에 있지 않았다. 예술과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개성 있는 상점과 카페, 갤러리가 모이면서 다른 지역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들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가로수길과 다른 상권을 구분해 주던 경계 역시 희미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 ‘굳이 가로수길을 찾아야 할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
둘째는 상인과 건물주, 행정기관이 함께 상권의 미래를 설계하는 협력체계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개별 점포의 노력만으로 거리 전체를 살리기는 어렵다. 상권의 방향을 정하고 콘텐츠를 만들며 이를 지속적으로 운영할 주체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셋째는 체류형·야간 콘텐츠의 부족이다.
관광객을 불러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얼마나 오래 머물게 하느냐가 상권 경쟁력을 좌우한다. 볼거리와 체험거리, 먹거리와 야간 콘텐츠가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방문객의 체류시간과 소비도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멜버른·싱가포르·뉴욕에서 찾는 해법
해외 도시들의 성공 사례는 가로수길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호주 멜버른은 낙후된 골목길을 문화예술과 결합한 ‘레인웨이(Laneway)’ 정책을 통해 세계적인 관광자원으로 발전시켰다. 싱가포르는 역사문화지구에 야간축제와 예술 콘텐츠를 접목해 새로운 방문 수요를 창출했다.
뉴욕의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는 상인과 건물주 등 지역 이해관계자들이 지역 환경과 서비스를 개선하고 상권 경쟁력을 높이는 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접근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공간보다 사람을, 시설보다 콘텐츠를, 개별 점포의 경쟁보다 지역 전체의 협력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관광객은 상품이 아니라 ‘경험’을 소비한다
오늘날 관광객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해 특정 지역을 방문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경험, 문화와 분위기를 함께 소비한다.
따라서 가로수길 활성화 정책 역시 단순히 빈 점포를 채우거나 유동인구를 늘리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핵심은 ‘가로수길만의 정체성을 어떻게 다시 만들 것인가’에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공실 점포를 신진 디자이너와 예술가들의 실험 공간으로 활용하는 팝업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임대료 부담 때문에 진입하기 어려운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방문객에게는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만나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가로수길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향수·뷰티·패션 등의 경쟁력을 관광과 연결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K-뷰티 스트리트’와 같은 특화 콘텐츠를 구축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한다면 가로수길만의 새로운 관광 브랜드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야간관광과 거리축제를 정례화해야 한다. 낮에 쇼핑하고 떠나는 상권에서 벗어나 저녁까지 문화와 음식, 공연과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거리로 변화해야 한다.
넷째, 자율상권구역 지정 등을 활용해 상인·건물주·행정이 함께 참여하는 상생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지속적인 변화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가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가로수길은 여전히 서울을 대표하는 거리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한 관광환경과 소비 트렌드에 맞춰 새로운 ‘가로수길다움’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임대료를 낮추고 공실을 채우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람들이 다시 가로수길을 찾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이 거리를 찾아야 할 이유,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이유,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경험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가로수길 상권 회복의 출발점은 ‘얼마에 빌려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거리에서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가로수길만이 제공할 수 있는 고유한 가치와 이야기를 다시 세우는 것. 바로 그곳에서 가로수길의 새로운 출발이 시작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