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수진(백석예술대학교 관광경영 전공 교수)

지난 10월 6일, 18일간 수원화성의 밤을 수놓던 빛의 여정이 막을 내렸다.
‘2026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단순한 기술 중심의 빛의 향연을 넘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수원화성에 담긴 조선의 역사와 정신을 현대 예술의 언어로 재해석한 행사였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문화관광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K-미디어아트가 세계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입증한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축제의 폐막은 하나의 행사가 끝났다는 사실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지켜 왔는지, 무엇을 새롭게 만들어 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관광의 미래를 열어 갈 것인지 묻는 출발점이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남긴 가장 큰 의미도 여기에 있다. 유산을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오늘의 감각으로 재현함으로써, 지역주민과 전 세계 방문객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확장했다는 점이다.
빛과 소리가 전한 깊은 이야기
미디어아트에서 기술은 중요한 도구이지만, 그 가치를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핵심은 언제나 ‘이야기’에 있다. 수원화성의 역사적 서사와 공간적 가치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역사라도 관람객의 마음에 다가가지 못한다면 오래 기억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방식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인물과 사건, 시대정신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K-미디어아트가 관광콘텐츠로 자리 잡기 위한 핵심 과제다.
2026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이러한 가치를 빛과 소리의 언어로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 화서문 성벽과 서북공심돈이 거대한 예술적 캔버스로 변신한 가운데, 230년 전 수원화성 축성의 시대와 정조대왕의 행차, 애민정신과 개혁 의지가 웅장한 음악과 함께 펼쳐졌다. 한국무용, 발레, 상모돌리기 등 다채로운 공연과 고래·나비 등 상상력 넘치는 조형물의 연출이 어우러지며 관람객에게 단순한 시각적 자극을 넘어선 깊은 감동을 전달했다.
이 순간 만큼은 수원화성의 성벽은 더 이상 단순한 돌담이 아니었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공간으로 관람객을 몰입시키는 가장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 도구이자, 대형 스크린으로 변모한 무대였다. 또한 행사 공간이 화서문과 장안문, 장안공원 일대로 확장되면서 미디어아트는 한 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넘어, 지역을 이동하며 발견하는 문화관광의 여정으로 이어졌다. 관람객은 빛을 따라 걸으며 공연을 만나고, 사진을 남기고, 지역의 먹거리와 상점을 경험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도시 전체를 하나의 관광 무대로 경험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
수원특례시가 보여준 '로컬리즘'의 승리
이번 행사의 성패를 가른 핵심 키워드는 ‘로컬리즘(Localism)’이다. 세계유산이라는 역사적 자산에 디지털 기술과 예술적 상상력을 결합하고, 수원 고유의 이야기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미디어아트 시장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힘은 결국 타 지역이 모방할 수 없는 뿌리, 즉 고유한 문화자산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해외의 성공적인 미디어아트 콘텐츠를 단순히 모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수원만이 지닌 역사와 공간, 지역의 기억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콘텐츠를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지역의 고유 가치를 미디어아트로 승화한 이번 시도는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수원특례시의 로컬리즘은 지역 자원을 활용하거나 지역성을 강조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 생활양식, 공동체의 기억을 존중하고, 이를 지역 주민과 함께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지역 예술가와 공연자, 시민과 상인,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고 경험한 이번 행사는 오늘의 수원이 지닌 문화적 역량을 보여주는 장이 되었다.
수원특례시, 스토리텔링형 관광콘텐츠의 미래를 열다
관광산업에서 로컬리즘이 중요한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 어디에서나 경험할 수 있는 유사한 콘텐츠는 순간적인 관심을 끌 수 있지만, 특정 지역을 다시 찾게 만드는 지속적인 매력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반면 그 장소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사람, 문화적 경험은 해당 지역을 대체할 수 없는 관광목적지로 만든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지향하는 로컬리즘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특히 2026년과 2027년이 ‘수원 방문의 해’라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수원특례시의 문화관광 전략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스토리텔링형 관광콘텐츠의 힘은 관람객이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무엇을 느끼고 기억하게 되었는가에 있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역사적 공간에 감각적 경험을 더함으로써 문화유산을 보다 친근하게 이해하게 했으며, 개인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관광콘텐츠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성과는 수원특례시가 K-미디어아트의 거점이자 글로컬 문화관광 도시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유구한 문화유산과 최첨단 미디어아트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할 때, 체류형 야간관광의 패러다임은 한층 확장될 수 있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일회성 야간 볼거리를 넘어 수원의 역사와 문화, 음식과 상권, 체류형 관광을 연결하는 대표 콘텐츠로 발전한다면, 수원은 세계유산을 보유한 도시를 넘어 세계유산을 창의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폐막 이후, 브랜드의 새로운 시작
2026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막을 내렸지만, 빛으로 새겨진 수원화성의 서사는 관람객의 마음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미디어아트를 이끄는 도시의 경쟁력은 가장 화려한 빛을 보여주는 데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 빛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누구와 함께하며,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가는가에 달려 있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브랜딩 감독의 관점에서 축제의 성공은 행사 기간 방문객 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관람객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수원화성의 역사와 수원이라는 도시에 대해 무엇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 그 경험이 재방문과 추천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 폐막 이후에는 다음 과제를 우선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첫째, 관람객 만족도, 이동 동선, 콘텐츠별 반응을 분석하여 다음 행사의 기획 방향을 구체화한다.
둘째, 영상, 음악, 공연, 공간 연출 등 축적된 창작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예술적 정체성을 강화한다.
셋째, 지역 상권과 주민, 예술가의 참여 성과를 점검하여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효과가 균형 있게 확산되는 구조를 만드는데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문화예술기관 및 관광산업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다국어 해설, 접근성, 디지털 홍보, 배리어프리 환경을 지속적으로 개선한다.
수원화성 미디어아트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시민 참여를 확대하며, 지역경제와 상생하는 구조를 갖출 때 비로소 그 빛이 행사 기간을 넘어 도시의 일상 속에서도 지속될 수 있다.
앞으로 수원화성 미디어아트가 로컬의 가치를 창의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재현하고, 모두를 위한 ‘포용적 관광(Inclusive Tourism)’의 모델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할 때 수원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에게 영감을 주는 K-미디어아트의 든든한 깃대가 될 것이다.











